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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온지 3주만에 도망간 베트남 큰엄마 이야기(국제결혼의 폐해)

이야기/Other|2020. 6. 22. 21:14

10년좀 넘었을거다.
큰엄마가 도망간지.
이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큰아빠는 가정에 대해 무심했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때리거나,
바람을 피웠던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런 큰아빠가 싫었는지,
어느날 큰엄마가 도망갔다더라.


그게 벌써 10년이 더 넘었고,
현재 큰아빠의 가족은 정말 괜찮았다.
내가 큰엄마에게 화난 것은
도망가고 난 후의 큰엄마의 태도 때문이다.
정말 도망간 이유가 큰아빠 때문이라면,
큰엄마는 자기 자식에게라도 연락을 했어야했다.


그러나 큰엄마는 그러지 못했다.
4남매에서 가장 막내인 남동생에게만
일절 연락을 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첫째부터 셋째까지에게는 연락을 잘 하면서
굳이 막내에게는 안하는 이유가 뭘까?
궁금했지만 나 역시도 그걸 물어볼정도로
큰엄마와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곧장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나서
막내동생까지 성인되었고 군대에 갈 나이다.
큰아빠에게는 자식들 모두 성인이 되었고
크게 뒷바라지 할 자식들이 없으니
나름 홀가분하게 지낼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큰아빠도 큰엄마를 보낸 후에 
제법 가정을 보살피게 되었다는 것이
지켜보는 사람 입장으로서 좋긴했다. 



하지만 문제는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큰아빠와 같이 사시면서
집안일을 하셨는데,
이제 이것들을 놓고싶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큰아빠에게 "국제결혼"을 할 것을 요청했다.


큰아빠는 당황했다.
'자식들까지 다 키워놨는데 이제와서 결혼요?'
이런 마음이 가장 컸다고 했다.
할머니때문에 등떠밀려 국제결혼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내가 이 소식을 알게 된 것은
큰아빠가 베트남을 가기 이틀전이였다.


"아니 무슨 이제와서 결혼이야?"
큰아빠의 국제결혼 얘기를 듣자마자 했던 말이다.
그리고 아빠는 나에게 할머니 얘기를 했다.
"결혼하기 싫어하는 사람을 
그렇게까지 시키면서까지 한다고? 이해가안가네."


라는 나의 말은 뒤로한 채,
큰아빠는 베트남을 세네번 왔다갔다하면서
한 사람과의 결혼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여자는 한국어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는 소식도 들렸고,
이리저리 한국에 오기위한 준비를 한다고 들었다.



그렇게 코로나가 있음에도 한국에 왔고,
자가격리가 끝난 후 삼촌의 가게를 도운다고 했다.
난 그렇게 큰아빠의 행복을 바랬다.
결혼은 사랑의 새시작이라고 하지만
큰아빠에게는 무늬만 결혼일 뿐 
하나의 '시작'이 되길 바랬다.



하지만 내 희망일뿐이였다.
그 베트남여자가 도망갔다고 들었다.
그날따라 이상하게 큰아빠가 잠에서 일찍 깼고,
베트남여자가 집에서 나가는것을 봤다더라.
말을 걸까 했지만 그냥 지켜봤고,
큰아빠도 몰래 따라나갔다고 했다.
베트남여자가 주위를 둘러보길래
큰아빠는 자기도모르게 몸을 숨겼고,
곧이어 한 봉고차가 오더니
그 베트남여자를 태우고 갔다더라.
경찰에 신고해보니 그 봉고차는
다른 지역의 톨게이트를 지났다고 했고
베트남여자의 핸드폰은 꺼져있었다.



이렇게 베트남여자는 자가격리가 끝나자마자
큰아빠의 집을 떠났다고 했다.



국제결혼이란뭘까?
좋아서 하는 결혼도
주구장창 이혼하는 마당에
국제결혼의 말로가 과연 행복할까?


"그래도 우리아들 결혼은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노부모의 마음 때문에,
등떠밀려 결혼하는 아들의 마음은
정말로 홀가분했을까?


국제결혼이라는 의미가
분명히 내가 어렸을 땐 이런게 아니였다.
그냥 사랑으로 만나는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남녀의 결혼.
이게 내가아는 국제결혼이였지만
어느샌가 의미가 너무나도 변해버렸다.
국제결혼을 하면서까지
얻고자하는 것이 도대체 뭔가싶다.


큰아빠가 다쳤을 마음이
나를 너무나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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